운문(짦은글)시.시조.동시 86

늙은 새

늙은 새 초당/ 김용자 지치고 늙은 새 한 마리 터널속을 빠저 나오려 안간 힘을 쓴다 밤이 가고 밖은 태양이 떠오르지만 여전히 밖은 어둡기만 하다 발버둥을 칠수록 빠져 드는 늪 눈은 떴으나 보이지 않고 귀는 열렸으나 듣지를 못한다 늙은새의 바램은 이게 아닌데 뿌옇게 회칠된 미라 처럼 온몸이 감겨저 간다 누굴까 붉은손을 흔들며 나를 부르는 소리 주홍글씨의 알을 깨고 밖으로 나오렴 무엇을 위하여 어디를 가랴 늙은 새 한 마리 날개를 접는다 Pluie D'ete - Gheorghe Zamfir

봄 동산에 오르면

봄 동산에 오르면 초당/ 김용자 여러 날 봄비와 꽃들은 자작 거리며 수선을 떨더니 과하지 않은 파스텔의 고급진 색으로 봄을 연출해 냈구나 솔잎의 은은한 향수 바람에 실어 온산에 날리고~ 흐르는 맑은 물소리 나의 이명을 쫓아 내 귀를 맑게 한다 화목한 새들의 함창은 뒤엉킨 내 혈관을 산뜻한 깃털처럼 비워 주고 소환하지 않은 행복한 추억은 동산에 와 뒹군다 Norman Candler - 작은소야곡

신작로

신작 로 초당/ 김용자 희뿌연 신작로 길에 내 지나온 추억이 눕는다 오일장 아버지 꽁치 꾸러미가 있고 무명 보따리 속엔 호떡 봉지 식을세라 잰걸음으로 오시던 어머님이 있다 명절이면 빼딱 구두 신작로에 볼 우물 남기며 선물꾸러미 한아름 않고 복숭아 꽃 처럼 환하게 웃던 내 언니도 있었다 아직도 신작로 길 위에는 기다림이 있다

응어리

응어리 초당/ 김용자 아주 오랫동안 내 마음 혼돈으로 아프게 한 응어리 가슴을 송곳으로 찌르듯 죄책감을 불러다 준 옹심 세월이 흐르면 잊힌다고 눈알이 튀어나올 만큼 밤 부엉이로 살게 하는 뿌리 깊은 응어리 누군가 말한다 화해하라고 그러나 그는 죄책감이라는 죄명만 내게 씌우고 돌아오지 못할 먼 여행을 떠났다 그래서 아프다 내 힘으로 나의 죄를심판할 수 없으니 신이여 저의 죄를 심판 하소서 페이지 / 러브이즈블루/audio>

산책길

산책 길 초당/ 김용자 몸의 게으름이 운동을 해야 한다는 의지에 떠 밀려 오랜만에 산책 길에 나섰다 초겨울의 알싸한 바람이 기분 나쁘지 않게 스킨십을 한다 겨울에게 옷을 내어준 나목들이 수줍은 듯 뻘쭘이 서있고 단벌 옷의 푸르른 소나무 나목의 곁을 지키며 절개와 기상을 뽐내듯 서서 내 바닥난 욕망도 깨워 준다' 산책길의 낙엽은 융단 길을 내어 주고 포드득 내려 앉은 까치 한 마리 ' 산책길의 동행이 돼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