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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년아,술 "한잔 하자"

언년아 술 "한잔하자" 초당/김용자 언년아, 이리 와라 “한잔 하자”아버지가아궁이 앞에서 부르신다 아버지와 나의 술상은늘 조촐했다옷칠 벗겨진작은 상 하나아궁이 앞에 놓이면그게 부녀의 술상이었다 눈 펑펑 오는 날 내. 새 덪에 걸린 참새 한 마리아궁이 석쇠 위에안주가 되어 주었고 오일장이 선 날엔흰 두루마기 자락바람 일구시며 지팡이에매달려온 오징어 한 마리어머니 양념 곱게 바르고 불길 속에서 몸부림치다안주가 되었다 마음 좋으셨던 아버지뭐든 “그래 그래” 하시던 어머니광 속엔 술이 마르지 않았다 제사 있는 날이면아버지와 함께 절을 올리고음복주라 핑계 대며아버지가 따라 주신 술넙죽넙죽 받아 마셨다 딸만 다섯인 집나는 보이시하게짧은 머리에 남장을 즐겼다아버지의 아들이 되고 싶었다 딸그만이 집에 양자로 오신..

소나기를 기다리며

소나기를 기다리며 초당/김용자 콘크리트로 가득한 도시숨조차 더디게 쉬는 날아스팔트 위로는기름 방울 스며든 듯 한 조각 햇살도 타오르고날씨를 전하는 텔레비전 속실험용 베이컨 한 줄이아스팔트 길위에서 녹는다 세 살 손자는땀과 눈물 뒤섞인 얼굴로고사리손을 흔들며밖에 나가자고 조른다 그늘 아래잠시 쉬어가고 싶지만사랑을 나누는 한 쌍의 벌레조차무심히 날아들며더위 속을 헤집고 다닌다 에어컨 바람은낡은 관절처럼 삐걱이며버거운 숨을 토한다 이런 날에는심통난 시어머니 얼굴 같은소나기라도 찾아와 창을두드려 주었으면 좋겠다 Electric Light Orchestra - Midnight Blue">Electric Light Orchestra - Midnight Blue

슬픈 미소

슬픈 미소 초당/김용자 “엄마, 오늘 공원 산책나오니 좋으세요?”“좋아, 좋아.”치매는 엄마의 기억을 모두 거두어 갔다. 효자손보다 익숙했던 아버지의 손길어릴 적 동네서 싸움질하다눈물 훔치던 우리를 보면 두 팔 걷어붙이고동네 악동들 꼼짝 못하게 하셨던자식밖에 모르던, 여장부 였던 울 엄마. 그런 엄마가 이제는우리 모두를 마음에서 놓고어디론가 자꾸 떠나려 하신다.그 긴 세월엄마는 오직 가족 속에만자신을 가두고 사셨기 때문일까 “누구세요?”엄마는 자식들을 보고 물으신다.그러다 문득기억 한 토막이 돌아오면아이처럼 깔깔 웃으며,“네가 누구였지?...” 갸우뚱 "가슴이 미어 진다. 신들은 모든 곳에 존재 할 수 없어어머니를 만들었다는데그렇다면 신들이어머니를 빌려 쓰기만 하고버리신 걸까... 아직 엄마의 얼굴에는..

여름날의 추억

여름날의 추억초당/ 김용자여름 바다에 서면추억이 달려 온다하얀 백사장에 네가 있고파도 소리에도 네 숨결이 실려 온다어디에 눈을 두어도 그곳엔 네가 있다바다를 끼고 달리던 차 안에도 푸르름이 익어 가던 그 계곡에도정상에서 "야호!"를 외치며땀을 씻어 내던 그곳에도어김없이 네가 있었다네가 떠나고 없는 이곳에서추억의 이삭을 주우려 애쓰지 않아도추억이 달려와내 주머니를 채운다

어느 시인의 죽음

Michel Pépé - La Biche d'Amour">Michel Pépé - La Biche d'Amour 어느 시인의 죽음 초당/ 김용자 낮이면 산천 초목과바람, 구름, 햇살이원고지 위에 내려앉고 밤이면 달과 별들이문학을 주제로 삼아토론을 벌이다 갔나요 삼라만상 고요한 날술잔에 어린 달빛에서깨달음을 캐내셨나요 홀로 외로움 벗 삼아세상 여행 마치시던 날누가 길동무 돼 주셨나요 맑고 고운 시혼 여기에 심고하늘에 별이 되 소서... (추모시)첫 시집을 낸 뒤 회수하고 싶을 만큼 부끄러웠을 때,먼저 전화를 주셨던 선생님. 짧은 글속에 철학이 있다며 “기대되는 시인”이라 말해 주신 선생님.그말씀 한마디가 지금까지 글을 쓰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기일을 맞은 오늘,그 말씀이 더욱 그립습..

옥 수수

옥 수수 초당/김용자 우리집 텃밭 옥수수비가 오면 도랑 내주고가뭄들면 아픈 다리 끌며달 보며 물을 주었다 주인의 정성을 먹고 자랐는지하늘 높은줄 모르고 키를 키우더니어느날 벌떼 들이 옥수숫대에 낙하저마다 쌍둥이를 품었노라 한다 아기의 머리는 뱃속에서 부터붉은 물감 곱게 물들여 부드러운숱 을 흩날리며 어미의 품을가득 채웠다 몇겹 포대기로 감싸 앉은 자식헤여질날이 머지 안았음을 아는지자꾸만 더 꼭꼭 감싸앉는다 [연주음악] 홍하의 골짜기 외 4곡